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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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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 1TV 로고.svg
KBS 1TV
KBS 제1텔레비전
오늘을 담는 창
국가
개국
1961년 12월 31일 (63주년)
ATV
HLKA-TV (수도권)[2]
HLKA-DTV (수도권)
HLKA-UHDTV (수도권)
HLKA-TDMB (수도권)
HLKI-TDMB (비수도권)[3]
채널
번호
15 (서울)|9-1 (가상)|9 (IPTV)
52 (전국)[4]9-1 (가상)[5]
방송
품질
화질
음향
2채널 돌비 디지털, MPEG-H 3D Audio 등
언어
가시청권역
운영
파일:한국방송공사워드마크.svg 편성본부
소유
파일:한국방송공사워드마크.svg
1. 개요2. 연혁
2.1.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폐지와 그 이후
3. 특징
3.1. 언론통폐합과 컬러화
4. 방송 권역
4.1. 본사
5. 디자인6. 방송 시작/종료 영상7. 로고8. ID 및 로고송9. NEXT10. 프로그램11. 광고

1. 개요[편집]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 로고송
오늘을 담는 창[8] - 캐치프레이즈

한국방송공사 산하 국가기간방송 TV채널. 호출부호는 HLKA-DTV / HLKA-UHDTV(이상 디지털 TV) / HLKA-TDMB(DMB), 서울지역 CH 9[9]/15[10]/UHD CH 52, 가상채널은 각각 9-1과 9-2에 설정되어 있다.

한국판 NHK G+BBC One에 해당하는 채널이다. 국가기간방송으로서 주로 보도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을 편성한다.[11][12]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 국가재난시에는 속보체제가 가동되며, 2016년 경주 지진으로 국가 재난안전 시스템이 갱신되기 이전에도 보도채널을 제외하면 속보전환이 가장 빠른 방송사였다. 재난/사고발생시로부터 뉴스특보 편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잡아 대략 20분 정도. 자동화된 시스템과 재난대응 인력의 상시기동이 있는 NHK의 긴급지진속보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수동전환 치고는 빠른 편이었다.

지상파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규제가 풀린 이후, 2012년 10월 8일에 국내 지상파 방송 최초로 상시 24시간 방송을 실시하였다.[13] 1995년 케이블TV 출범 이후 사실상 의미를 상실한 규제였으나 낮시간대 종일방송을 실시한 후에도 상당기간 새벽 정파는 계속되고 었었다.[14]

2. 연혁[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해 주세요.
1961년 12월 31일, 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이 KBS-TV(HLKA-TV)로 개국했다. 1962년 1월 15일에는 정규방송을 했고, 1963년 1월 1일에 수신료와 시청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개시한 뒤 공보부 측의 조직개편에 따라 '서울텔레비전방송국'으로 분리됐다.[15]

1968년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공보부가 '문화공보부'로 개편되자 조직도 다시 짜여져 서울TV국은 국제방송국과 함께 중앙방송국으로 합쳐졌고, 1969년 5월 1일에는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하였고, 교육방송을 실시하기도 했다.[16] 1973년 한국방송공사 출범으로 인해 그쪽 관할이 된 후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TBC-TVKBS 2TV로 흡수되면서[17] KBS 1TV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다시 12년만에 1981년 3월 7일에는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재개하였다.1981년 3월 7일부터 1994년 9월 30일까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보냈다.[18] 1994년 10월 1일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했다.[* 13년동안 광고방송안내하는 유럽식 방식을 쓴적도 있었다.

2.1.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폐지와 그 이후[편집]

1993년 수신료 인상 드립을 쳤지만 되려 시청자들에게 냉소를 듣는 등 여의치 않자 수신료 합산징수로 징수액수를 절감하고 징수율을 높여 매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 1994년 7월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폐지가 결정되었다. 이후 1994년 10월 1일부터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편성하지 않게 되었다.[19] 이후 징수 방식 변경에 따라 징수율이 50%대에서 90%대까지 치솟으며 KBS 수신료 수입이 급증하고 1TV의 공영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당시 1TV의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10% 초반까지 하락한다. 이 전략은 당시 보도 프로그램의 중립성 강화와 맞물리면서[20]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KBS 1TV가 평균 시청률 1위 채널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이건 중년층 이상에서의 시청률이 높기 때문이고 젊은층 사이에서의 시청률은 크게 낮다.

물론 그로 인해서 부작용도 있는데 KBS 2TV의 시청률이 부진할 경우에는 1TV에서 광고를 따로 붙일 수 없게 되니 KBS 입장에서 상당히 손해가 된다. 물론 당시에야 수신료 수입이 엄청 불어났기에 KBS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이기는 했지만 현재도 수신료가 인상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덕택에 2008년에 정연주 사장이 쫓겨나게 된 이유로 경영부실이라는 이유로 내세워지기까지도 했을 정도이다. 사실 이 때의 적자는 그냥 2TV의 시청률이 안 나오다보니 광고가 안 팔려서 그런 거인데 이러다 보니 영업이익(935억원 적자출처)과 당기순이익(765억원 적자출처)이 모두 적자이었다. 만약 1990년대 초식으로 1TV에서 상업광고가 편성되었더라도 주말 9시 뉴스, 대하사극 사이에 광고를 넣는 건 가능할테니 대충 적자는 안 났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물론 케이블TV 채널도 있지만 케이블TV에서 걷는 수입이 적은 편인지라...

그리고 2017년 들어서 MBCSBS와 마찬가지로 중간광고 해야하다는 내용을 계속 보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채널이미지 때문인지 1TV 상업광고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2TV에서도 중간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KBS 내부에서 KBS 1TV의 상업광고를 재개할 경우에 상당한 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고, 1TV 상업광고 재개에 대한 제안도 나온 적이 있기는 한다만, 채널 이미지 상실로 시청률이 뚝 떨어질 수 있는 데다가 신문광고와 지상파 광고시장 모두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언론사들과의 마찰을 각오해야 하고 거기에 수신료 징수에 대한 명분도 사라지기 때문에 1TV 광고에 대한 언급을 꺼려 한다는 카더라가 나오기는 한다.

3. 특징[편집]

  • 위에 적혀있듯이 지상파 TV 채널 가운데 상업광고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채널이다.[22] 그러나 이미 1960년대에 상업광고를 편성했던 적이 있고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제한적으로 상업광고를 편성하였다.
  • KBS 2TV를 포함한 다른 방송국들과 달리 로고송을 잘 띄우지 않으며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바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 상징색은 1993년 가을부터 '그린정신'을 선포한 이래 2003년까지는 KBS 전체의 상징색을 녹색으로 설정하면서 녹색이었으나 2001년부터 공식 약칭을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국방송'으로 바꾸고, 2003년 이후 채널 이미지를 '한국인의 중심채널'로 설정하면서 쪽빛 계열의 푸른색으로 고정하여 이 무렵부터 ID나 KBS 뉴스 9 등에서 푸른색 큐브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23] 다만 방송중단 화면에 표출되어 있는 KBS 로고의 경우 2006년까지는 녹색 로고가 표출되었다.[24]
  • 1995년 정시를 알리는 시보 방송[25]이 단순한 3초 시보(뚜, 뚜, 뚜, 땡)에서 멜로디 형태로 바뀌었다. 동시에 "정성을 다하는 KBS가 정시를 알려드립니다." 멘트가 추가되었다. 이어서 2000년도에 2TV에서 정시 시보음과 동일한 시보음으로 단일화와 동시에 정시를 알리는 멘트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가 정시를 알려드립니다."로 변경되었고,출처 2006년도에 한번 더 변경되었다.출처
  • 국내 방송사로는 유일하게 2003년 개편 이후 2004년부터 방송시작과 종료방송 때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과 끝방송을 알렸다. 그 동안에는 1TV나 2TV 모두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과 끝방송을 알렸지만[26] 2003년 개편 이후부터 1TV 한정으로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과 끝방송을 알렸다. 2018년에는 2TV와 마찬가지로 다시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과 끝방송을 알렸다가 2019년에는 1TV에 한해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과 끝방송을 알린다.(상업광고방송)을 했지만, 1994년 10월 1일부터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사라지게 되고 공익광고방송만 나가게 되었다.]

3.1. 언론통폐합과 컬러화[편집]

1980년 11월 12일, 광주민주화 운동과 서울의 봄을 유혈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보다 효과적인 언론통제를 위해 전면적으로 언론통폐합을 단행했다.[27] 이로 인해 방송과 신문의 겸영 및 주재기자제가 금지되고 지방지는 1도 1지로, 5개사로 난립되었던 통신사는 단일 통신사 '연합통신'으로 개편되었으며, 거기에 CBS의 보도기능과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폐지되었고, TBC, DBS가 KBS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KBS는 TV 채널 2개[28], 라디오 채널 7개를 가져 초 거대 방송사로 등극하였고, 이에 따라 기존 KBS-TV는 12월 1일부로 KBS 1TV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와 동시에 수출의 날 기념식 중계방송을 컬러로 중계함으로써 세계에서 81번째로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29] 이후 1980년 12월 9일, 컬러화비용과 TBC, DBS를 인수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상업광고 재개를 허용받고, 동시에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였는데, 흑백 TV 시청료 인상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각종 로비로 컬러 TV 시청료를 월 2500원으로 정하는데 성공[30]하고 동시에 1981년 3월 7일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재개를 하면서 재정을 충당하게 되었다.

1982년 1월에 재정충당을 위해 KBS 2TV의 광고시간을 확대하면서 공영성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1TV의 광고시간이 축소[31]되었다가 당년 4월에 평일 오전시간대에 블록광고를 편성하게 되어 광고 시간이 늘어났다.[32] 물론 당시엔 친정부/친자본성 편파방송으로 시청료도 아까워 죽겠는데 광고도 같이 늘어났으니 시청자들이 KBS를 곱게 보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거의 명절에나 편성해주던 상황이었으며 그것도 영화 재방으로 TV용은 결코 아니었다. 학생운동이나 공안사건이 터지면 '보도특집'을 긴급 편성해 민주화 운동 자체를 '좌경 공산폭동'으로 매도하는가 하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감추고 허구적 성공사례만 내보냈다. 심지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희석시키고 광고 수입을 더 벌기 위해 편성표의 반 이상을 스포츠에 할애하고 광고 역시 명색이 공영방송인데 나레이터의 육감적인 목소리로 낸 "돌려 먹을래"나 "빨아 먹을래" 같은 선정적 멘트까지 거르지 않았다. 이에 시청자가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면 징수원들이 집까지 들이닥쳐 '빨갱이'라 부르며 폭언, 공갈, 협박, 폭행까지 감행했다.

이게 곪아 터진게 1985년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33]이었는데, 1985년 총선과정에서 KBS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을 노골적으로 치켜세우고 야당인 신민당을 대놓고 비하하자 시청료 거부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하며 1985년부터 시청료 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에 KBS는 1985년 5월에 술 광고를 폐지하고, SA시간대(20:00 ~ 22:30)의 광고를 줄였다.[34] 하지만 정작 가장 문제가 되었던 편파보도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시청료 거부운동이 확산일로를 걷게 되고, 거기에 KNCC 등 민주단체까지 나서서 KBS 시청거부 운동까지 벌이자 1986년 7월에 평일 오후 블록광고(20:30 ~ 20:35)를 폐지하였다. 물론 당연히 미봉책에 불과했고 정부는 KBS에 강제징수권 부여 후 대도시에 통합고지서 제도를 도입하고 경찰과 보도지침까지 동원하며 이를 막으려 했다. 이후에도 KBS 시청료 징수율은 1988년까지 계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 편 이 시기 편성 가운데서 두드러진 점이 있었는데 스포츠 중계방송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 특히 주말 낮 시간대를 거의 스포츠 중계방송으로 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35] 이는 5공의 스포츠 장려정책[36]도 있었지만 2TV와 다르게 1TV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에 따로 광고를 붙일 수는 없었고 프로그램 사이에 방영하는 블록광고도 일정 횟수[37]이상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포츠 중계방송의 편성이 훨씬 이득이었던지라 당연히 1TV의 스포츠 중계방송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내려왔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어서 현재도 KBS 1TV에서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38]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39] 그리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때 개막식과 폐막식은 주로 KBS 1TV를 통해 중계되어 타 방송과 다르게 광고없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40]

민주화 이후 1988년에 올림픽 특집-중계프로그램, 사회고발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편성하였으며, 떠돌이 까치[41], 아기공룡 둘리, 까치의 날개,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42] 이후 1989년 3월 봄개편 들어, KBS는 1TV를 보도,교양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편성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 3월 평일 블록광고를 폐지했다. 하지만 1TV 광고수입은 오히려 급증했는데, 1TV에 스포츠 중계, 특집 프로그램을 대량 편성해서 이전보다 광고수익은 증가했다.[43] SBS의 개국 이후 한 동안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늘어났다가 1992년 가을개편과 1993년 봄개편 들어 다시 보도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아져 갔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아나운서가 나와서 방송순서를 * 1980~90년대에 이 채널에서 금요나이터라 하여 금요일 저녁 시간대에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는 지금과 달리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 등을 많이 제작할 수 없어서 스포츠 중계나 해외수입 다큐멘터리, 외화 시리즈[44] 등으로 방송편성을 많이 때웠다. 게다가 전두환 정권의 3S정책의 일환으로 KBS건 MBC건 스포츠 중계가 매우 잦았다.[45] 참고로 금요나이터 프로그램 자체는 BBC에 있던 "Grandstand"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으로[46] 이후 이 프로그램은 본가(?)의 명칭을 그대로 번역한 "KBS 스포츠 중계석" 등으로 명맥을 이어갔으나 하이라이트 방송이지 중계방송은 아니었다.
그러나 1994년 10월 광고 방송 폐지 이후 점차 줄어들어 2000년대 이후에는 KBO 리그[47]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경기를 2TV에서 방송한다. 지금은 주로 K리그/V리그/여자프로농구의 일부 경기를 중계방송 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이나 교양, 오락 프로그램에 대하여 처음에 2TV에서 했던 방송을 1TV로 옮겨서 방송하거나 재방송하는 특징이 있다.[48] 물론 그 역도 존재한다.
  • 지방에서 유일하게 HD DMB로 수신하는 채널이다.

4. 방송 권역[편집]

4.1. 본사[편집]

경인방송센터 발족으로 인천광역시, 경기도 지역 송신소, 중계소가 경인방송센터 관할로 넘어감에 따라 인천광역시, 경기도 지역은 IPTV, 케이블TV에서 본사 1TV 대신 경인 1TV가 나오지만 경우에 따라 본사 1TV 전파의 직접 수신이 가능하다.


5. 디자인[편집]

파일:20210811_015621.jpg
2021년 5월 31일부터 자체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자세한 설명은 오늘을 담는 창 문서로.

6. 방송 시작/종료 영상[편집]

KBS1 - Sign On (2022년)
KBS - 애국가 (2021년)

7. 로고[편집]

파일:KBS 1TV 로고.svg
1984년 10월 29일 ~ 2018년 9월 2일
2018년 9월 3일 ~ 현재

8. ID 및 로고송[편집]


△ 1980년대~2010년까지의 ID 변천사.


△ 1994년 10월~2001년 3월 2일까지 쓰였던 로고송.[50]


△ 1980년대 중반 - 90년대 중반까지 KBS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쓰인 ID 로고송으로 KBS 노래를 어레인지해서 썼다.[51]


△ 1988년 서울 올림픽 버전


△ 1992년~1993년까지 쓰였던 로고송.


△ 2005년부터 2014년 초까지 사용된 버전


△ 2001년 3월 3일부터 2021년 8월 14일까지[52] KBS 뉴스 9 시작하기전에 항상 틀어주던 영상과 로고송. 직후에 9시 시보가 이어진다.[53] 2007년 2018년


△ 2018년 8월 13일부터 쓰이고 있는 로고송. 공식 명칭은 '평화테마송'으로, '함께 하는 평화, 함께 여는 미래'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KBS가 써오던 슬로건이다. MR 연주에는 남북 전통악기 가야금,옥류금이 협주했고, 로고송을 부른 이는 오연준 군.

현재는 MBC와 비슷하게 도레파미솔이라는 음도 사용한다.

2021년 8월 16일에 KBS 1TV 로고송이 20년 만에 리뉴얼 되었다.[54] 작곡자 김수철씨는 무더위와 싸워가며 한 달 간 작업해서 새로운 로고송을 내놓았다. 편곡을 의뢰한 KBS측은 결과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수철씨는 원곡의 선율은 살리면서 클래식, 노래, 퓨전국악, 랩, 크로스오버 등 5개 장르로 로고송을 탈바꿈시켰다. KBS는 새 로고송을 다양한 TV 홍보 스팟, 채널 ID, 라디오 방송의 브릿지 음악, KBS myK 등 디지털 플랫폼의 인트로, 엔드택, 배경음악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링크

개편 초창기에는 여러가지 버전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다 현재는 이 버전으로 고정되었다.

9. NEXT[편집]


△ 2021년 5월 31일부터 개편된 NEXT 영상.

1980년대 중반까지는 아침방송에 한해서 부분적으로 NEXT 영상이 있었다가 2019년부터 주요 프로그램에 한해 다시 부활하여 사용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모든 프로그램으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10. 프로그램[편집]

11. 광고[편집]



1984년 블록광고 자료
[DMB] 1.1 1.2 1.3 [2] ATV는 아날로그(Analog) TV를 말하며 PAL 방식에 한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이유는 윗동네의 아날로그 방송 방식이 PAL이었기 때문이다. 즉, 윗동네 방향으로도 전파를 초강출력으로 쏜다는 뜻. 대신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 부로 지상파 방송 4사 (KBS, MBC, SBS, EBS)의 NTSC 방식 송출이 종료됨에 따라 NTSC→PAL로 변환하던 예전과 달리 디지털 방송(ATSC) HD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송출한다. 표에 가로 줄이 쳐져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그리고 개국 당시에는 HLCK-TV를 사용했는데, 언론통폐합과 함께 제각각이었던 무선국 호출부호를 HLKA국 하나로 모으면서 지금과 같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3] 출처(방통위 재허가 의견청취 요약문)[4] 울산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강릉시, 횡성군 제외.[5] HD채널과 UHD채널의 가상 번호가 동일한 이유는 별개의 방식, 별개의 송신망으로 송출되고 있기 때문이다.[8] 2021년 5월 31일사용 중[9] 아날로그 TV(NTSC) 기준[10] 디지털 TV(ATSC) 기준[11] 참고로 KBS 2TV에서는 오락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양 프로그램의 비중이 더 높다. 하지만 (공영방송치고) 강한 상업성은 사실이다.(아무래도 광고를 편성하다 보니 시청률에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 없으니...)[12]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 조사를 해보면 이 채널이 지상파 채널 중 항상 1위를 기록한다.병원, 은행, 공항, 터미널, 기차역 등 공공기관에서 맨날 틀어놓으니 당연할 결과일지도...[13] 그 이전에 지상파 텔레비전의 24시간 방송을 허용한 나라는 있었다.(예 :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에서는 규제가 풀리기 이전에는 지상파 텔레비전이 새벽에 방송하려면 사전에 허가가 필요했으며, 심지어 90년대 초반까지는 규정외 시간에 속보를 때리려고 해도 공보처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는 YS시절 3대 육해공 재난을 겪은 이후 다소 완화된다.[14] 본래 2000년까지 낮 종일방송을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미약했던 케이블방송이 어느정도 성장할때까지 미뤄놓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광고를 뺐길까봐 우려했던 신문사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던 요인이었다.[15] 가뭄이 어려워져서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및 수신료, 시청료까지 추가되었다.[16] 6년동안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했다.[17] TBC-TV는 2011년 JTBC로 재개국한다.[18] 1994년 1월 26일 수요일에 MBC-TV에서 MBC 뉴스데스크에 있는 뉴스는 KBS-1TV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를 하겠다고 보도를 했다. 케이블TV방송국을 만들어서 유선방송의 법을 고치겠다고 밝혔고, 지역민방 8군데를 구상이 진전이 되고 있다고 했다.[19] 제품 없는 광고가 있기는 하지만 광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수신료로 운영을 하고 있기는 하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사라지게 되고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없이 공익광고방송만 하게 되었다.[20] 물론 그 와중에 1995년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건설 현장 가스 폭발 참사처럼 방송 위에 굽신거린다거나 한 적이 있었다. 홍두표 사장의 숨겨진 흑역사[21] 이는 자매채널인 KBS 2TV 일일드라마도 포함된다.[22] 다른 하나는 EBS 2TV. 다만 광고 폐지 이후에도 실수로 상업광고를 몇 번 방영한 적은 있다. 2TV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1TV로 재방송했을 때 광고를 따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방송했어야 되는데 광고를 편집하지 않는 실수로 광고가 그대로 전파를 탄 일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간대나 채널 특성상 인터넷 이용률이 높지 않은 시청자들이 TV를 보는 시간대라 별로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광고를 방영한다 해서 따로 광고비를 받아낸다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다.[23] 2TV 상징색은 노란색. 이쪽도 1TV 못지않게 노란색 동그라미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24] 기사 1, 기사 2[25] 정확히는 평일 뉴스네트워크 시작 전 오후 7시 시보, 뉴스라인 시작 전 오후 11시 시보, 주말 KBS 뉴스 시작 전 정오시보 등에 적용[26] 이것은 MBC나 SBS, EBS도 마찬가지이다.[27] 물론 겉으로는 사이비 기자 퇴치, 방송공영화를 내세웠다.[28] KBS 3TVKBS 교육FM은 1981년 2월 2일에 개국했다.[29] 이렇게 컬러방송 시행이 늦어진 건 1970년대 초반부터 컬러방송 시행논의가 있었지만 이에 박정희가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면서 반대해서라는 후문이 있다. 하지만 KBS를 비롯한 대부분의 TV 방송국들은 컬러방송 준비가 이미 완료되어 있었고, 컬러필름으로 녹화한 1970년대 프로그램들이 꽤 남아있다.[30] 동시기 해외 TV시청료를 본다면 영국은 월 2.83파운드(당시 한화로 4300원), 일본은 월 880엔(2830원)선이고 뉴질랜드는 월 2300원 선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을 생각해본다면(...)[31] 1일 3블록→ 평일 1블럭, 주말 3블럭.[32] 평일 1블럭→ 2블럭, 주말 3블럭→ 4블럭.[33] 사실 TV 시청료 징수 거부운동이 시작된건 1982년부터지만, 당시 여러가지 한계점들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34] 기존에 1블록당 10개씩 묶어 편성되었던 걸 1블록당 8개로 줄였다.[35] 이는 당시 MBC도 마찬기지였다. 다만 MBC의 겨우, MBC 청룡이라는 야구팀을 소유했었다는 점이 가장 컸기는 했다(...).[36] 이른 바 86년 아시안게임 - 88년 올림픽 유치.[37] 1982년부터 1986년까지 4회, 그 이후에는 3회.[38] K리그, 씨름, 겨울의 V-리그, 프로농구 및 종목별 국가대표 선발전.[39] 물론 광고를 붙일 수는 없으니 월드컵, 올림픽. WBC나 축구국대전의 경우 2TV에서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 (단, 경기시간이 겹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3차전은 2TV가 한 경기(대한민국 경기 포함)를 중계하면 다른 경기는 1TV에서 중계한다.) 또 KBO 리그는 광고 수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거의 2TV에서 중계하고 있는 상황이다.[40]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폐막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폐막식,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은 2TV에서 방송되었다.[41] 다만 떠돌이 까치는 1987년 5월 5일에 방영되었으니 민주화 이전의 일이다.[42] 다만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 옛날 옛적에, 2020 우주의 원더키디와 같은 시리즈물은 2TV에서 첫 방송했다.(다만 아기공룡 둘리의 경우 첫 방영은 6 - 7개의 에피소드를 여러 개 묶어서 방영하였다. 그래서 1TV에서 방영했던 것이다.)[43] 다만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광고수입이 감소세에 접어들기도 했다.[44] 지금으로 치면 미드에 해당한다.[45] 오죽하면 이 당시 KBS의 별명이 "Korean Baseball System"이었다고(...) 출처는 이계진 아나운서의 자서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딸꾹!"이다. 그런데 KBS는 사실 당시 유일한 경쟁사이던 MBC에 야구 콘텐츠는 선점당했기 때문에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 K-리그(당시 명칭은 그냥 '프로축구'였다)로 쪼르르 달려가서 9시뉴스 리포터를 축구장 관중 경품추첨 현장에 내보내는 등 콘텐츠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46] BBC의 경우 그 유명한 MOTM(Match of the day)이 이 프로그램의 명맥을 계속 잇고 있다.[47] 1998년 8월 7일 수원 삼성-현대전이 1TV에서 중계된 최후의 평일 저녁 페넌트레이스 경기였다. 이후에도 평일 저녁 페넌트레이스 경기가 가끔 중계되지만 2TV에서만 중계된다.[48] 애니메이션의 경우 1990년대 당시 전국노래자랑 뒷시간대에 KBS 자체 제작 한국 애니메이션을 재방영하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49] 채널 재조정 이전의 수신 지도라 현재는 그 지도보다는 수신 범위가 살짝 더 넓을 수 있다.[50] 참고로 이 시기에 KBS 2TV에서도 같은 합창단이 부른 로고송이 쓰였다. 그쪽은 "좋은 방송 밝은 세상 KBS" 였다. 영상을 보면 종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ID에서 벗어나 열린음악회를 관람 중인 국민이 차례대로 등장하는데, 이는 KBS가 국민과 함께 하겠다라는 걸 의미하는 듯 하다. 실은 열린음악회 홍보용 ID라 카더라.[51] 참고로 90년대 초중반 당시에는 주말에 한해서지만 KBS 뉴스 9가 시작되기 전에 광고가 방송되고 나서 나왔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52] 2018년 8월 12일부터 26일까지는 '평화테마송' 송출.[53] 2001년 3월 3일부터 KBS 한국방송으로 약칭을 변경해서 기존 로고송에서 음색을 바꾸고 가사 뒤에 한국방송을 덧붙었다. 참고로 이 ID 영상에 나오는 길이는 현재는 KBS 뉴스 9 전이나 지역방송시작전에만 볼 수 있다. 나머지 시간대에는 축약버전이 나옴. 사실 개그 콘서트 시청자 의견에도 나온다.[54] 원래는 하루 전인 8월 15일 KBS 뉴스 9 방송 직전 ID영상에서부터 변경된 로고송을 내보내려 했으나, 20:50부터 방송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 생중계가 길어져서 ID 영상 없이 곧바로 KBS 뉴스 9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55] 다만, 1990년 3월에 평일 블록광고가 폐지되었다.[56] 그런 이유로 1TV에서 제공 자막을 볼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57] KBS 1TV처럼 블록광고했던 시절의 방송자료로 엔딩 제공 크레딧 없이 프로그램 끝났고 바로 방송사 ID로 넘어갔다.[58] 광고방송이 사라져서 광고없이 공익광고방송만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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